살았나?
살아있구나.
그래, 기어코 살아남았구나.
꼼짝없이 썩어가는 몸에서도 번들거리는 두 눈동자는 생생하게 자신의 생명이 이어져 있음을 알리며 일렁인다.
뼛속까지 갈리고 온몸이 조각난 채 흩어진 끔찍한 고통,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은 집요하게도 모든 감각을 휘젓고 망가뜨려 놓아 머릿속을 진창으로 녹아버리게 한다.
이 생이 질긴 건지, 혹은,
이 여자가 멍청한 건지.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기회였다.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된 시선, 누구 하나 붙잡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 완벽한- 자유의 기회.
그래, 그 덕에 제 몸이 이 빌어먹을 힘으로도 감당하지 못하고 망가져 녹아내릴 때 그대로 도망쳤어야지.
내가 너 하나 따위 신경 쓸 틈도 없이 버거워하며 죽어갈 때 그대로 날 짓밟고 도망갔어야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네가 분에 넘치게 바라던 거지 같은 자유 따위의 삶을 원한다며 갔어야지.
그렇게 저 먼 곳을 바라보았으면서.
그렇게 당장이라도 사라지고 싶다는 듯 시선을 두었으면서.
그렇게 내게 어떠한 감정 미련 하나 없었으면서.
너, 비겁하구나. 비겁하고 멍청하고 어리석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그 전장 속에서 날 구할 리가.
"킥, 크흑, 하, ...흐흐, 흐."
끝없는 비웃음이 흘러나온다.
애초에 너도 기대 같은 건 안 했을 거 아니야, 살려줘서 고마워. 같은 소리 따위는.
둔하게도, 어긋난 것을 억지로 맞춰 끼운 것처럼 삐걱거리는 손을 뻗어 가녀린 목을 틀어쥔다.
당연하게도 밀어냄은 없다.
그저 이제와 지독히 후회하면서도 스스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이 죽은 듯 굴고 있는 이 멍청한 여자는, 자신이 만들어내고 만 지독한 결과를 절망스럽게도 마주하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까.
그래, 너도 만만치 않은 겁쟁이에 비겁한 도망자였구나. 너도 결국 나와 같아, 너도 결국 벗어나지 못한다고!
네가 날 떠나서 뭘 할 수 있겠어, 날 떠나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어? 너 따위가 쓸모가 있겠어?
하얀 목을 힘껏 틀어쥔다. 이건 애초에 네가 내게 쥐여준 목줄이나 다름없잖아.
실컷 후회하고 실컷 원망해 봐, 결국 네가 선택한 길은 여기야.
멍청하고, 사랑스러운 나나.
예쁘게도 찼네. 아주... 잘 어울려. 너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