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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드림 퍼먹기21

도망 어쩌면 바라던 순간일 수도, 혹은 고통을 남기게 될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다정하게, 상냥하게도 '다녀왔어.' 속삭이던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에는, 정말이지. 손을 잡은 사람이 있다면, 그 다른 손을 잡기 위해 내팽개쳐진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 원한을 사는 일쯤이야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자기 죗값은 자신이 치러야 하지만, 나를 정말 그를 끌어들일 수 있는 인질 따위처럼 보였나. 보여주기 위해 옆에 끼고 다니던 것이 어쩌면 당신의 착오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 사람들이 끝까지 그에게 속아 넘어간 것을 증명하는 어리석음 일지도 모른다.애초에 저런 다정한 목소리를 낼 리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제게 뻗어오는 그의 거죽을 뒤집어쓴 손을 보며 생각한다.자유를 찾을 기회일까? 혹은 어디로 도망쳐야.. 2024. 7. 21.
억울한가? 혹은, 다행인가. 어느 대답이 좋을까. 차라리 악몽이 나을지도 모르는 이 환한 꿈에 대해 해야 할 말은. 하늘은 불길한 징조 하나 없이 투명하며 잔잔하게 흘러가고, 바람은 기분 좋게 뺨을 간질이며 이 하루에는 그저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평온만이 가득함을 알린다. 가져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다면 그 훗날의 시간은 이러한 풍경일까. 단정하지도 않고, 이상한 무늬가 박힌 셔츠를 마음대로 풀어 헤친 채 여전히 지저분하게 높이 틀어 묶은 머리를 휘날리며 제 이름을 부르고 달려가는 그 모습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하게 보여서. 어쩌면, 그래, 너는 이상한 것이 보이지 않나 보지. 너희는, 무엇도 언제 서로를 빼앗길까 두려움을 숨기며 지켜보며 동시에 붙잡고 살아가야 .. 2024. 4. 13.
눈에띄여서 너와 난 반드시 행복할거야. 그렇게 믿어. 믿을 수 밖에 없어. 그러니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 약속해, 마지막까지 함께 웃겠다고. 조금의 슬픔도 눈물도 없이 행복하게 서로의 곁을 지키자고. 언제나, 언제까지나 네 곁에서 사랑할게. 내 삶을 내게 나누어 주어 고마워, 라이언. 두려움에 떨어도 괜찮아요. 때로는 도망쳐봐요. 때로는 슬퍼하고, 약해진 마음에 멈추어도 괜찮아요. 당신이 돌아올 바다는 늘 이곳에 있으니까. 언제든 가라앉는 당신을 품어줄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 심해에서 함께 헤엄칠까요, 우리. 아무런 걱정도 의심도 없이 그저 서로의 존재에 의지한 채 호흡할까요, 그러니, 나의 파도여. 온전히 내게 부서져 잠겨요. 스스로의 존재를 짓밟은 채 억누른 삶 의미 없을 행복이니 평화니,.. 2024. 4. 11.
[그치만당신이먼저맛있었잖아] 살았나? 살아있구나. 그래, 기어코 살아남았구나. 꼼짝없이 썩어가는 몸에서도 번들거리는 두 눈동자는 생생하게 자신의 생명이 이어져 있음을 알리며 일렁인다. 뼛속까지 갈리고 온몸이 조각난 채 흩어진 끔찍한 고통,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은 집요하게도 모든 감각을 휘젓고 망가뜨려 놓아 머릿속을 진창으로 녹아버리게 한다. 이 생이 질긴 건지, 혹은, 이 여자가 멍청한 건지.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기회였다.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된 시선, 누구 하나 붙잡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 완벽한- 자유의 기회. 그래, 그 덕에 제 몸이 이 빌어먹을 힘으로도 감당하지 못하고 망가져 녹아내릴 때 그대로 도망쳤어야지. 내가 너 하나 따위 신경 쓸 틈도 없이 버거워하며 죽어갈 때 그대로 날 짓밟고 도망갔어야지. 뒤도 돌아보지 .. 2024.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