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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드림 퍼먹기

단문

by 렛쓰 2024. 4. 4.

허무하다.


그렇게 평생을 바라며 기어코 출구 없는 미궁의 끝에 도달해 손에 쥔 자유는 어떠한가.

꿈결처럼 달콤하던가? 웃음이 끊이지 않고 마음껏 즐기며 행복하던가?
혹은, 파편에 베인 것처럼 날카롭고 무정하며 씁쓸하던가.

무엇도 아니다.

한 생을 걸어 발버둥 치며 모든 것을 걸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바라던 자유는, 

이토록 허무한 것인가.


가져본 자가 누릴 줄도 안다고 하지.
만져보지도, 단 한 순간도 가져보지도 못한 것을 막상 손에 쥐여주면 

멍청하게도 손에 쥔 것을 바라보며 제 손안에 있으면서도 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거가 그리운가, 누군가가 옆에서 자신에게 명령하고 지시하던 그때가? 

자신을 도구로 필요로 하던 때가 차라리 나았다며 후회라도 하는 걸까?

글쎄, 그건 내가 바라던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확실하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표정은 어떠했더라. 분함, 미약한 배신감, 짜증, 그리고 이상한 확신.


'가봐, 넌 결국 돌아올 거니까.'


그런 말을 하였던가.


미궁의 길은 하나다. 도달할 곳은 정해져 있어. 나가는 곳 또한.


이곳은 분명한 미궁의 끝이다. 뒤돌아서면,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길.

그렇다고, 글쎄. 당신의 흔적을 찾아 밖으로 나올 생각은 없어요.

차라리 미궁 속에 사는 괴물이 되는 게 나을 거야.

 

 

 


 

 

 

 

 



우린 아마, 좋은 곳은 절대 못 갈 거야, 그렇죠? 심판관.


미동 없는 눈꺼풀을 바라보며 두려움인지, 해방감인지 모를 목소리가 떨린다.
그래, 이게 당신의 끝이구나. 그토록 많은 이의 끔찍한 생의 끝을 보았으면서 

자신의 끝은 이리도 평온하게 가서야 되는가.
많은 이들이 억울하겠어. 

웃음을 터뜨린다.

나는 아마도... 내 사랑스러운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나? 

아니면, 당신과 같이 무저갱으로 빠져 끝없는 죄악을 뒤집어쓴 채 고통받으려나?
난 나름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억울하게도.


아아,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당신의 '신' 은 잘 마주했을까. 

모르지, 그토록 신실할수록 배신당한 꼴이 우스울 텐데. 

아쉽구나, 그 얼굴을 볼 수 없어서.


붉은 눈동자가 가라앉는다.



 

 


 

 

 




너도 두려움을 느껴?

죽은 듯 잠이 든 얼굴을 마주하며 속삭인다.

너도 때로는 두려워? 외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 마음이 아프기도 해? 너도 다른 이들과 같은 감정을 느껴?

너도 '사람' 이잖아.
인간임을 포기하며 죄책감도 갖지 않은 채 무감하게 살아가는 너도, 결국 같은 존재잖아.
아닌가,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지는데.


차마 닿지 못하는 손이 창백한 살결을 쓸어내린다.


있지, 나는 매 순간이 두려운 것 같아. 슬프기도 해, 외롭기도 하고. 그리고 아프기도 해.
내가 느껴선 안 될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 그래서 그게 날 더 괴롭게 하거든.
나는 평범한 사람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너로 인해 두려워하며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벗어나길 원치 않는 것은 뭘까.
아마 나보고 멀리 도망치라며 놓아주어도 나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말 거야.
이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거든.
그래도 기뻐해 줘, 이런 감정을 주는 건 너뿐이니까.

축하해, 이제 나를 잃을까 두려울 일은 없겠네.


그리 말하며 짓는 미소는 희미했던가. 울고 있던가.


당신의 꿈에는... 부디 내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게.
나는 오늘의 꿈에서도 널, 만나러 갈 거야.

이따 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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