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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드림 퍼먹기

[사이퍼즈] Dearest

by 렛쓰 2020. 5. 20.

Dear. Rick.

 

 

릭, 날 황혼의 저편으로 데려다줘요. 작게 속삭이면 당신은 늘 세상 끝이라도, 저 끝없는 절망뿐이라 해도 붙잡은 두 손을 놓지 않겠다는 듯 나를 강하게 끌어안아 주었죠. 타인의 온기가, 사람과의 접촉이 이렇게도 따뜻하고, 달콤하고도 사랑스러울 수 있던가 생각했던 것은 당신이 처음이었으니까요.

당신의 손을 처음 맞잡고 느낀 것이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의 안도감, 행복, 그리고 버거울 만큼 차오르는 서러운 감정이.
행복하다면 희생해야만 하는 줄 알았어요. 어리석게도 약하기만 했던 나는 사랑한다면, 사랑받아야 한다면 무조건 적으로 희생해야 그 관계가 이어지는 줄 알았지 뭐예요. 그런 엉망으로 무너져내린 나의 작은 세계를 부수고, 모든 것을 새롭게 덧칠해가며 내 우주를 따뜻한 빛으로 물들여준 당신을.

용기 내어 어떤 고통이라도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당신을 끌어안았던 때가 생각이 나요. 어떠한 상처도 입고 있지 않던 당신이지만 그런데도 나에게는 아주 작은 것이라고 하여도, 찰나라 하여도 닿는 누군가의 온기가 고통스럽게만 다가왔으니까. 하지만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는 것처럼 지금까지 느껴왔던 모든 것들과는 달리 당신의 온기는 한없이 따뜻하고, 상냥하고, 다정해서. 그 단단한 당신의 두 팔은 절대 나를 놓아줄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어서.

내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될까, 어떠한 대가 없이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되는 걸까. 수많은 불안감과 두려움이 나를 잠식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깨우며 늘 이곳에 있을 거라, 늘 곁에 있을 거라 단언하던 당신의 그 말이 생각이 나요. 비록 지금은 당신이 내 곁에 없지만,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다정한 당신은 끝까지 나와 그 약속을 지켜주었으니까요.

내가 감히 당신을 원망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원망해야 한다면,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곧바로 당신에게 달려가지 못한 나를 원망할 거에요. 하지만 나 스스로 자책하지 않겠다고도 약속했으니까요. 당신과 한 약속은 전부 지키고 싶은걸.

나의 작고 초라한 세계를 찬란한 노을로, 따뜻한 빛으로 새롭게 창조해낸 당신이니까. 하지만 조금은 투정 부리고 싶어요. 당신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내가, 아직까지도 약하기만 했던 내가 너무나도 원망스럽고 고통스러워서. 한심해서. 당신은 어떤 순간이어도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곁에 있어 주었으면서, 왜 나는 그러질 못했는지. 이 몸이 갈기갈기 찢겨도 괜찮은데, 잠시의 고통만 견딘다면, 당신의 모든 고통을 내가 다 가져갔더라면 우리는 더는 슬퍼할 일 없이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왜 그런 선택을 다정한 그대가 했어야 하는건지...

 

릭, 내 사랑. 그래요. 나는 그때 당신 곁에 없던 나를 원망해요. 그때 먼저 다가가지 못했던 나를. 차라리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어두운 곳에서 계속해서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찮은 목숨을 이어나가고 있었더라면 당신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도.... ....이런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해줬는데. 미안해요, 미안해요.

.... 그곳에서의 여행은 어떤가요? 나는 당신이 나와 가고 싶다고 한 곳들을 전부 가보지는 못한 마음에 아쉬움이 크지만, 혼자서 하는 여행이 무엇이 재미있을까 싶어서 가지 않았어요. 내게 필요한 건 당신이고, 그런 당신의 기억과 온기가 남아있는 곳이 좋으니까요.
인제 와서야 하는 말.. 너무 늦은 말이지만, 돌아보니 알 것 같아요. 나의 찬란해진 세계는 당신이 창조해낸 것이기에 당신이 없어진다면 쉽게 무너진다는 것을. 모든 것이 망가지고,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기에 스스로 빛을 꺼뜨려 버렸다고.

밝게 빛나던 별들은 모두 추락해 땅을 뒤엎고, 아름답던 밤하늘은 어둑하기 그지없죠. 나의 초라한 우주는 그래요. 내 우주 그 자체가 당신이었으니까. 이제 나는 더는 무엇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아요. 약속했었으니까.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희생할게요.

나도 이제 여행을 떠날까 싶어요, 릭.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볼까 싶은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도통 모르는 거 있죠. 그래도... 항상 당신이 먼저 나를 찾아주었으니까 이제는 내가 찾으러 나설 차례에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아요.

사랑한다는 말은 직접 전하고 싶어요. 곧, 곧. 조금만 기다려줘요. 이제 정말로 당신을 만나러 갈게요. 사랑하는 나의 우주, 여행자. 나의 릭.



추신. 오늘 노을이 정말 아름다워요. 당신이 언젠가 내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주었을 때의 날처럼요.

 

 

   From. Rie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