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사람의 의심을 거두고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첫 만남을 기억하는 것.
그곳의 공간이 어떠했는지, 나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까지 전부.
가치는 없는 그 정보 하나하나가 멍청하게도 상대를 자신에게 쉽게 믿음을 내어주게 하는 것임을 바스티안 슐츠는 누구보다 잘 알고, 누구보다 잘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 가령... 사랑스러운 ■ ■ ■ ■와의 관계에서 또한.
그뿐 아니라 이런 비즈니스에서도 꽤 잘 먹힌단 말이야. 그렇기에 누구의 의심 하나 사지 않고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사람들 사이에 파고들어 믿음을 사기란 지나치게 쉬운 일이었으니.
하지만, 이 존재는 어떠한가. 신임을 얻어 그 가치를 끌어내어 이용할 만한 존재인가?
혹은, 달콤한 말로 거짓된 감정만을 속삭이며 자신의 늪으로 끌어들일 존재인가?
그것에 대한 대답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그럼에도 버릇된 행동은 그 황당했던 첫 만남을 똑똑하게 담고 있었기에 그때를 떠올린다.
어떠한 것도 기억할 필요 없는, 쓸모 있는 정보라곤 단 하나 없는 만남.
그래, 쥐새끼처럼 도망이나 가고 있던 그 모습 말이야.
애초에 도망칠 거면, 제대로 계획해서 탈출을 해야지. 그렇게 허술하게 도망간다고 도망 쳐지나? 얼마나, 어디까지 멍청한 건지... 아니, 오히려 그래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텐데.
몇 번 강박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풀기를 반복하다면 생각은 빠르게도 정리된다.
이것의 이용 가치는 얼마나 되는가.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가지고 있는 힘이야 어마 무시하지. 그래, 솔직히 조금은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 자신에게 감히 달려들 성정이 되지 못하는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을 놓은 채로 있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그렇다면 그 성정은? 자신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나? 별말 없이 수긍하나? 어느 정도는.
그렇다면 온전히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가? ... 아닐걸. 아직은.
차라리 그 ■ ■ ■ ■처럼 순진하고 멍청하게도 나를 믿고 따라주었다면 어땠을까? 그 모습을 상상하니 오싹하게 소름이 돋는 기분이다. 이건 짜릿함인지, 혹은 그 반대의 감정인지 모를 정도로.
네가 그 애처럼 말 잘 듣는 귀여운 인형으로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골치 아플 일은 없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그러면 뭔가 재미없을 것 같지 않아? 순간 반사적으로 불쑥 타고 올라온 생각에 잠시 침묵하다 하, 하는 숨을 내뱉는다. 그런가? 그래, 한 번 갖고 놀았던 장난감은 재미가 없지. 똑같은 걸 원하는 게 아니야. 색다른, 새로운 것이 좋지. 그래, 뭐든 쉽게 질리기 마련이니...
무엇보다, 쉽게 망가지지도 않을 것 같고. 그렇지?
그런 거다. 쓸데없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머리를 헤집던 생각을 정리했다 착각하며 몸을 일으킨다.
오래간만에 보러 갈까.
바스티안 슐츠는 가벼운 걸음으로 뚜렷한 목적을 향해 향한다.
물론, 그것이 스스로가 만들어낸 늪이라는 사실은 영영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