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를 잃고 혼자 떠돌아다니며 위협받지 않기 위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 한껏 위협을 하는 것과도 같은 그 눈. 나는 그 붉던 눈동자를 기억한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제게 생생하던 그 모습, 잭 더 리퍼.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당신이 철저히 이용당하며 망가지고, 나락으로 끌어내려 제 손으로 소중하던 모든 것의 피를 묻히며 슬퍼하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거리를 배회하던 그 살인마를.
사람들은 그를 잭 더 리퍼라 불렀고, 조금만 해가 어둑해지면 거리가 죽은 듯 고요해질 정도로 그를 두려워하고, 그가 결국엔 붙잡혀 사형대에 오를 때에는 모두가 환호했다.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시민이었다면 나 또한 무리에 섞여 그의 죽음을 기뻐하며 끝까지 그의 죽음을 눈에 담으려 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조차도 무리하게 알아낸 진실이지만. 인제야 진실을 밝히며 그는 사실 여왕에게 이용당했을 뿐인 가엾은 사내입니다.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자였습니다. 한다 해도 누가 믿을 것인가? 억지로 그에게 지명된 변호사조차 도 믿지 못하던 말을. 여왕에게 거스를 자는 없다. 여왕에게 이용당해 버려지는 장기 말은 그뿐 아니라 바닥에 채일 정도로 널려있다. 무엇보다 그는 나의 존재조차 모르니, 낯선 자의 호의는 그에게 또 다른 지옥으로 갈 길을 안내해주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누구보다 잭 더 리퍼의 죽음을 바라고 있는 것은, 인제야 안식을 취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어떠한 미동 없이 목에 밧줄이 걸리는 것을 평온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 잭 더 리퍼 자신 일 것이다. 그래, 이제 여왕의 개 노릇은 멈춰야지. 다시는 그 눈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아쉽기는 했지만, 내 욕심으로 그런 짓은 하지 않아.
하지만 세상은 잔인하고, 끝없이 이기적이었고, 끝없이 탐욕스러웠다. 분명히 죽음을 맞이해 누구보다 평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은 그의 모습을 기억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절대 살아있어선 안 될 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아마 신은 그를 버렸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억지로 죽은 자를 되살려 연구 성과를 위해 그를 이용하고, 원하는 결과에 미치지 못하니 다시 버려지는 그의 삶은 이다지도 비참하고도 참혹해야만 할까. 과거의 죄라고 하기에는…. 그의 잘못이 있던가?
연구실에 죽은 듯 누워 반항도 없이 생체실험을 당하고, 가끔 과거의 기억과 감정에 혼돈이 와 발악하듯 울부짖던 모습을 마주 봤다. 지금 울고 있는 거니? 아니면, 웃고 있는 거니? 들리지 않을 그의 앞에서 중얼거린 말은 덧없이 흘러갔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있어야 할 지옥은 아니었지만, 다른 형태의 새로운 지옥이 그를 맞이하고 있는 꼴이겠지. 아버지라 부르며 그를 끝까지 이용한 자를 따르고, 마지막까지 믿었던 그 모습은.
그렇게 더욱더 비참해질 뿐이었던 그의 강제적인 두 번째 삶이 끝난 것을 보고 등을 돌렸다. 이후로는 결코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 여겼으니까.
그래, 처음은 우연이고, 두 번의 만남은 인연, 세 번의 만남은 운명이라 하였던가.
클리브 스테플, 그의 능력은 신비롭기도 하고, 제게 많은 이득을 내어줄 것 같았다. 문제라면 원하는 대로 순순히 움직여주지 않는 것이겠지만 그런 점이 더 매력이 있는 것 아니겠어. 애초에 제가 원한다면 죽어줄 것 같이 굴던 남자들 또한 시늉만 할 뿐, 그런 어설픈 장난보다 오히려 다른 의미에서 전부 내보일 것 같은 그가 낫지 않은가.
단순한 인연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것까지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늘 말없이 사라지는 것은 문제지.
그의 자리를 찾아오면, 오늘도 당연하게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조사하러 나갔어요. 라는 말에 아쉽네요, 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또 어떠한 진실을 파고들고 싶어 움직였을까.
그날따라 그의 뒤를 쫓아간 것은 평소보다 강하게 든 호기심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더욱 바빠 보였지. 잠도 제대로 자지 않을 만큼. 무언가 크게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의 흔적을 쫓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도착한 장소가 의외의 장소라는 것은 확실해 천천히 주변을 훑어본다.
아인트 호벤 고아원, 이곳은…. 확실히, 기자라면 구미가 당길 많은 진실이 잠들어 있는 곳이겠지. 기척을 숨기지도 않고 주변을 둘러보다 익숙한 발소리에 등을 돌아보는 것은.
.....세 번의 만남은 운명이라 했지. 운명일까? 이 운명을 이어주기 위해 네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라면 신은 네게 어떠한 연유로도 평범한 행복을 주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확실했다. 네 죄는 무엇일까.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죄? 감히 평범한 일상을 꿈꾸었던 죄? 변신 능력자로 태어난 죄? 조종당하며 네 손으로 소중한 것을 망가뜨린 죄? 어떤 것이 네 죄명이 될 수 있을까. 어떤 것이 너를 이렇게까지 끌어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건 마치 내게 선물과도 같았다. 마치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준비해온 선물을 인제야 건네받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랑스러운 연인의 몸에 깃든 살인마의 혼이라니. 나는 그 눈을 기억한다.
그 눈이 한 줌의 불안감과 고통, 절망, 혼란을 끌어안은 채 자신을 온전히 담아냄은.
나는 너를 잊고 있지 않았어.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다 생각했지만, 묘한 기시감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은 이것이겠지.
세상은 네게 잔인하고, 나 또한 네게 잔인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네가 나를 원망할 이유를 내어줄 수 있고, 네가 나를 사랑할 이유를 내어줄 수 있다.
세상에 남은 건 잭 더 리퍼지, 네가 아니잖니. 너를 기억하는 사람은 모두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그' 를 기억하는 나는 거짓말처럼, 운명과도 같이 네 앞에 서 있기에.
천천히 손을 뻗는다. 이 손은 너를 나락으로 이끌 것이고, 또한 지독한 절망으로 끌어낼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뿐인 구원이자, 어둠 속에서 이질적이게 빛나는 작은 빛이다. 이 빛이 너를 태울지도 모르겠지.
세상은 잔인한 만큼, 나 또한 그 세상에 녹아 있었기에. 그래도 너는 원하는 만큼 나를 원망해도 좋을 기회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가엾은 나의 운명.
"…. 내 손을 잡아, 사랑하는 나의 ■■■■■."
네 이름을 끌어안고 내게 익사하렴,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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