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몇 번째 의식인지.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과정과 결과까지 확실히 기억해 전달하는 것. 또한 그 과정에서 여럿 마주한 배교자, 이단들을 그분의 앞에 데려와 참회하도록 만드는 것. 반복되는 것이 지루한가? 숭고한 뜻을, 그 여정을, 기울어진 천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직 많으니. 한 여자의 영혼과 마음이 떠돌다 나비가 되어 돌아왔듯, 피와 가죽이 엉킨 흉측한 괴물 사이로 돌아온 이들도 존재했다. 기적이라면 기적이라 할 수도 있고, 그저 자잘한 결과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아, 물론, 심문관님께 비할 바는 아니지요. 검은 머리의 사제는 금빛의 눈을 새액 휘어 웃으며 말했다. 그 옆을, 정확히는 그보다 아주 약간 뒤에서 걷고 있는 한 여인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 멍한 얼굴로 앞을 보고 걷다 이따금 사제의 말에 고개를 그쪽으로 돌릴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불안정하긴 하나 의식의 너머에서 돌아온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신실함이 부족한 듯하여, 교화가 필요하다 판단을 내렸습니다. 사제, 케인 로페즈가 보고를 이어가는 동안 여자는 계속 걸었다. 경어를 써가며 극진히 모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 모든 것을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드레스는 꼭 밤을 걷어내는 것 같고, 같이 흔들리는 머리카락의 색이 그보다는 옅은 탓에 은하수를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도 그 주위에 반짝이는 가루 같은 것들이 떠돌고 있었다. 그것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것은 케인의 말이 얼추 마무리되어갈 즈음이었다. 그 불완전한 것의 능력을 가라앉히고 제대로 된 교화를 이어가기 위해, 빛을 완전히 차단한 곳에서 공포와 마주하고 있노라고.
“심판관님께선 아마…….”
그곳에 이단 심판관이 있을 것이라고. 케인이 말끝을 흐리면 그제야 여자는 발을 멈추었다. 그녀가 멈추면, 케인 역시 멈추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하명하세요.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웃으며 저를 바라보는 얼굴에 여자는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가도 가라앉은 눈으로 앞을 보았다. 심문관님. 그 부름 뒤에 사제의 입에서 이름이 나오려는 순간.
“케인.”
셀레네는 그의 이름을 불러 말을 끊었다. 그러나 사제는 불쾌한 기색은커녕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아아, 알겠습니다. 남은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원하시는 대로.”
셀레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마저 앞으로 걸어가다, 옆으로 틀어 케인 로페즈가 말했던 방으로 향할 뿐이었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울릴 때마다 지나가는 신도들은 홀린 듯 그녀를 보기도, 바라는 것을 내어달라 붙잡고픈 충동을 참는 것처럼 두 손을 모은 채 약하게 떨기도 했다. 그러나 셀레네는 그들의 시선을 가로질러 그가 있을 곳으로 향했다.
끼이익, 두꺼운 철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처음부터 잠긴 적조차 없었다. 잠그지 않더라도 이 안에 있는 인물이 나갈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일까. 채찍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묵직한 공기가 방 안을 누르고, 그것보다 더욱 짙고 지독한 어둠을 희미한 빛이 걷어내기 시작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들어온 빛에 잿빛의 머리카락이 비쳤다. 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운 방. 그 안에서 공포로 이단을 심판하는 이는, 교화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무심코 뒤를 돌고 말았다. 자신의 일을, 교화와 심판을 행할 때는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던 이였건만. 그럼에도 새어 들어온 빛과 익숙한 나비의 날갯짓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래, 맞아. 당신, 당신이었어. 당신이…….”
아아, 아아아! 어둠과 공포 속에서 주저앉은 채 있던 신도는, 빛을 등지고 방안을 보고 있는 여인을 보며 탄식에 가까운 소리를 내었다. 그래, 당신이었지. 그때 당신이 보여준 것도, 내가 본 것도, 전부, 전부. 하하, 아, 안타리우스여. 그렇게 내내 웅크려 있던 그가 셀레네가 나타나자마자 울부짖고, 웃다 울고, 또 무릎을 꿇고 앉아 숭배라도 하듯 나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만.”
묵직하게 바닥을 내리치는 채찍의 소리와 함께, 심판관이 일갈했다. 그가 주는 공포에 떨면서도 신도는 셀레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주위를 맴돌던 나비가 갑자기 허공에서 바스라지며 사라진 순간, 툭. 신도는 힘없이 쓰러져 잠에 빠졌다. 심판과 교화가 필요한 이에게 기꺼이 평온을 건넨다. 그 행위에 대해 심판관은 어떠한 항의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셀레네의 손이 심판관의 팔을 붙잡고, 그 방의 밖으로 끌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떨림은 없다. 두려움도 없다. 그럼에도, 어둠 속에서 빛을 바라고, 당신이 올 것이라 기대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니콜라스 클레멘츠는 셀레네의 걸음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셀레네는 니콜라스의 팔을 놓아주지 않고 계속 걷기만 했다. 아까의 장소에서 멀어지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곳까지 걸음할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뒷모습에 니콜라스는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어두운 방에, 갇힌 것도 아니고 스스로 들어갔건만. 그곳에서 나오라고. 그 안에 있지 말고 밝은 곳으로, 밤이 어둡다 할지라도 달이 밝은 그 아래에서 숨을 쉬라고. 그런 의미였을까. 아니면 그곳에서 마주한 신실함이 부족한 것의 숭배를, 원하지 않는 실험과 어긋난 뜻을, 기울다 못해 서서히 녹슬고 있는 천칭을 피하고 싶어서일까. 나를 위함입니까, 당신을 위함입니까. 니콜라스는 묻지 않았다.
“필요와 바람은 다르니까요.”
그럴 필요가 없었으므로. 셀레네는 그 대답과 함께 그제야 멈춰 섰다. 그러면 니콜라스는 옷이 구겨질 정도로 제 팔을 쥐고 있던 손을 조심스레 떼어내고, 다시 제 손에 얹어 쥐고선 나란히 걸었다.
어둠 속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제게 걸음한 것은 그녀의 바람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바람은. 그 어둠에 빛을 들이고, 심판을 방해하였음에도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도 않던 나의 바람은.
“니콜라스?”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당신에게 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니, 길을 잃지는 않겠군요. 니콜라스는 저를 부르는 셀레네의 목소리에 눈을 마주했다. 식사는 아직입니까. 니콜라스는 그렇게 말하며 셀레네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밖은 저녁이었고, 약하게 바람이 불어 걷기에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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