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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모태구 X 서 은 X 최 윤]

by 렛쓰 2021. 5. 25.

각다 (@gagda_CM) 님 커미션 에 맞춰서 쓴 글

 

 

 

 

 

 

 

 

 

 

 

 

 

"....그만.. 그만!!"

절규에 가까운 소리로 소리치며 제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남자의 손을 겨우겨우 뿌리치고 그대로 주춤거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깨질 듯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은 채 내달린다.
지금 잡히면 죽는다! 그런 생각만이 가득한 채 죽어라 내달려 빠르게 그의 집을 빠져나와 허둥거리는 손길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며 덜덜 떨리는 손을 내려본다. 그런 와중에도 핸드폰을 챙겨온 게 불행 중 다행일까?
자신이 사랑스럽다 못해 끔찍한 연인은 제가 도망칠 시간은 잠시라도 주겠지. 지금쯤 아마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보자, 이런 심정으로 아주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를 잘 알기에 소름이 끼쳐 으슬으슬한 기분에 몸을 부르르 떨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냅다 내달리며 아파트 정문을 나와 보이는 택시에 몸을 내던지듯 안으로 올라타 다급하게 소리친다.

"아, 아저씨, 빨리, 빨리요! 상용시에, 그, 큰 성당... ....윽..."

꽤 다급해 보이는 제 모습에 당황해하면서도 어어, 그래요. 하고 바로 출발해준 덕분일까. 아주 조금은 마음이 놓이자마자 밀려들어 오는 두통에 머리를 두 손으로 짚으며 고통에 어쩔 줄 몰라 신음을 삼키며 손으로 머리를 짓누른다.
젠장, 왜 이 망할 능력은 사라지지도 않는 건지.
오늘도 어김없이 짙은 피 냄새를 몸에 두른 채 잔뜩 상기된 얼굴로 당연하게도 제 손을 마주 잡는 소름 끼치는 감각이란.
당장에라도 뿌리치고 싶었지만, 그가 그런 것을 쉽게 허락할 리 없었기에 결국에는 원치 않는 고통스럽고도 잔인한 기억을 억지로 머리에 쑤셔박히는 고통에 괴로워 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엔 정도가 너무 심했기에 이러다가 머리가 터져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이전에는 이런 기억들을 자주 접할 일이 없었기에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갈수록 늘어가는 횟수와 짧아지는 주기에 참지 못하고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러운 듯한 통증을 참지 못하고 그를 뿌리치고 겨우 도망쳐 나온 거지만...
아니, 정말 도망친 거라고 할 수 있나? 이미 그가 저를 따라오고 있을지도 모르고, 성운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그를 보고 어서 나를 찾아달라고 선전하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세밀한 것을 신경 쓰고 계산할 정신조차 없었기에 무조건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 머리에 맴돌았기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진정하려 하면 할수록 더욱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는다.


"아저씨, 빨리, 좀, ....흐윽...!"

"어, 어어...!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녀?!"

"그냥, 그냥 좀... ........"

너무 고통스러워서 신음 조차도 나오지 않아 숨죽여 흐느끼기만 한 채 겨우 덜덜 떨리는 몸을 두 팔로 감싸며 주변을 훑어본다. 거의, 거의 다 온 건가? 제발 일찍 도착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중간중간 검은색의 승용차가 보이기만 하면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리기에 창문을 쳐다보는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푹 숙여 팔을 감싸고 있던 손으로 어떻게든 고통을 줄이려 다시 머리를 짚은 채 옅게 신음한다.

눈을 감으면 감을수록 더욱더 선명해지는 기억들. 그가 제 손을 잡고 원치 않는 것을 보여줄 때마다 그가 한 모든 행동이 마치 자신이 한 것 같아서, 고통스러워하며 살려달라 비는 사람들을 눈앞에 두고 내려찍으며 기뻐하듯 소름 끼치는 웃음을 흘리는 저 목소리가 마치 나의 목소리 같아서. 우직, 하고 부서져서는 뼈와 살이, 사방으로 튀어가며 온몸을 덮어가는 피가, 묵직한 케틀벨을 들고 있는 단단한 손이, 그 모든 감각이, 행동이, 촉감이, 마치 내가 한 것처럼 모든 것이 선명해지니까. 가끔은 내가 그가 한 모든 행동을 그대로 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건 다 괜찮아.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는데, 이런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는데. 절대로 잊히지 않는 것은... .....살려달라 비는 사람들의 표정, 절규, 눈물. 어떻게든 도망치려 발악하는 그 행동 하나하나가 절대로 잊히지 않은 채 뇌리에 박혀있으니까.
이러다가는 정말로 나까지 미쳐가서 그에게 동화 돼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궁극적인 두려움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허무하게 죽어갔는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실조차도 끔찍하고 괴로우며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죄책감에 허우적거린다.
그런 무거운 죄책감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잠재워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 여기 맞아요? 말한 성당. 응? 정신 좀 차려봐요!"

"아.... ...."

멍하니 있다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보이는 익숙한 성당의 모습에 다급하게 계산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택시의 문을 열어젖히며 발을 내디딘다. 제발, 제발 있어 줘. 제발...

"...은 씨?"

"....신부, 님."

마태오, 마태오...

거짓말처럼 제 앞에 서 있는 그. 그를 보자마자 방금까지도 제 목을 조여오던 죄책감과 고통이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겨우 트인 숨통에 허억, 하고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의지와는 다르게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으며 저를 끌어안는 단단한 품에 몸을 늘어뜨리며 흐릿한 시야에 그를 담는다.

아마 이곳으로 도망친 것이 좋은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분명, 분명 모태구는 내가 이곳으로 향할 것을 아주 잘 알고 있겠지. 여유롭게 콧노래나 부르며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이곳 외에는 없는걸. 나를 얌전히 내어주지 않을 사람, 나를 지켜줄 사람, 내 고통을, 죄책감을 잠재워줄 사람은. 고맙고, 미안해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한 채 무겁게 내려앉는 눈을 억지로 또 그를 바라보지만 흐릿해지는 정신에 이내 눈을 감아버린다.


 

본능적이었다. 이대로 일찍 집에 돌아간다면,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그런 오싹한 감각. 신이 자신에게 경고를 하는 것일까? 모두가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성당의 내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자신이 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건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스스로 이해가 가지를 않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아 결국 자리에 앉아 묵주를 손에 꽉 쥔 채 십자가를 바라본다.

무엇일까, 이 찝찝한 감각은. 설마 또 손이 어디선가 돌아다니며 이전과 같은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보지만 화평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기에 고개를 저으며 불안함으로 술렁이는 마음을 잡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사제는 욕심이 없어야 한다. 무언가를 탐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의 목표를 갖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달린 후에 겨우 찾아온 평화, 그 끝에서 다시금 마주한 자신의 불안.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는 만남.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던 것을 단시간에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단번에 서로의 이해자가 되며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인연은 더더욱.

 

어렵고도 고통스럽게 찾아온 평화 끝에 나타나 저를 송두리째 흔들며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당신은, 도대체. 가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녀를 온전히 갖고 싶다. 남의 것을 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의 곁에서 어떻게든 꺼내와 구원이라는 명분으로 제 곁에 두고 싶었다. 욕정을 품어서도 안 된다. 붉게 물든 뺨으로 상냥하게 웃거나, 고통스러워하며 울먹이는 얼굴을 볼 때마다 뺨을 쓰다듬고 싶었고, 입을 맞추고 싶었다.

강한 충동, 흔들림, 불안함.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저와 있어 달라는 한마디면 힘들게 얻은 이 평안함을 내던지고 기꺼이 그녀라는 지옥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묵주를 쥔 손에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 뿌득,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흠칫하며 생각을 떨치고 큰 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얼빠진 얼굴로 예배당을 나선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는 감각에서야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건지 자각이 들어 깊은 회의감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올린다.

무엇 때문에 이 시간까지 여기 남아있는 건지, 이제 슬슬 교통수단조차 끊길 시간이다. 그러기 전에 돌아가야겠다 여겨 물건을 챙기려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은 씨?"

이 시간에 누가 올리가 없는데. 성당 바로 앞에 내리는 듯한 차의 브레이크음 소리에 고개를 돌아보니 보이는 것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 모습.


"....신부, 님."

비틀거리던 다리는 얼마 못 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자 왜 그녀가 여기에 있지? 생각하기 전에 몸이 멋대로 움직여 다급하게 다가가 쓰러지기 직전에야 품에 끌어안으며 하얗게 뜬 그녀를 떨리는 시선으로 내려본다.

"은 씨?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은 씨, 서은 씨!"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결국 듣지 못한 채 제품에서 힘없이 늘어지는 그녀의 모습에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급히 안아 올려 성당으로 들어선다. 무슨, 무슨 일이지? 행색을 보아하니 분명 자신이 모르는 일이 있던 것은 분명한데. 가방 하나도 없이 전화기만 손에 들고 급하게 올 일이 무엇이지. 설마 그 남자가, 또....

방금까지도 고통에 찌푸려져 있던 미간이 성당 내부로 들어서자 사그라든 듯 조금씩 편안해지는 모습에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분노를 어찌할 순 없었다. 또, 그런 짓을...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그가 찾지 못하는 곳에 숨겨두고 싶었다. 그래야 이 사람이 살 수 있지 않을까.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될 텐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분노는 제 이성적인 판단을 쉽게 잡아먹으며 그 남자가 없어지기만 하면, 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서야 움찔하며 겨우 정신을 차리곤 제 품에 안겨 늘어져 있는 그녀를 내려다본다.
...병원은 그가 알아낼 수 있으니 그가 모르는 제집으로 향하는 게 안전한 길이라 여겨 잠시 눕혀놓으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끼익-'

평소와는 달리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묵직하게 열리는 문, 불길한 인기척, 짙게 풍기는 혈향. 이건...

"....."


"......"

소름 끼치도록 자신과 닮은, 어쩌면 동일 인물이라고 해도 속을 수 있을 정도로 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 하지만 필시 제게 악귀가 든다면 아마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순수 악으로 빚은 인간이 있다면 완벽한 피조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사람.
아마 그녀를 쫓아온 거겠지. 다급해 보이지도 않는 모습에 분명 그녀가 이곳으로 도망칠 걸 알고 있다는 듯 들어서는 그 순간에는 여유로워 보였지만, 이내 제 품에 안겨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빠르게 표정을 굳히며 주변을 무겁게 짓누르는 살기에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춘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 손, 떼는 게 좋을 겁니다."

"...."

마치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누군가가 허락을 받지 않고 함부로 손을 대 결국 망가뜨린 것을 봐버린 사람의 표정과도 같았다. 일종의 경고겠지, 당장 손을 떼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경고. 그 살기 어린 목소리에도 나는 그녀를 끌어안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더 힘을 줘 제품으로 바짝 끌어안으며 어떻게든 지키려는 생각뿐. 그녀가 다른 곳도 아닌 제게 찾아온 것도 그런 맥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내게 찾아왔더라도 나는, 당신이 나를 떠올리고 다급한 순간에 나를 찾았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오늘은,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형제님."

애써 쥔 평화를 버릴 수 있을 것 같으니까.